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(문단 편집) === 창단부터 실업시절까지 === ||[[파일:535214_81144_3608.jpg|width=100%]]|| || 1966년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동일방직 여자배구단[* [[http://www.incheonilbo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535214|[인천일보 연중기획] 38년만에 돌아온 '거미군단' 인천배구 도약 '강스파이크']]] || 흥국생명의 공식 창단은 1971년 '''[[태광산업]] 여자배구단'''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지만, 실제로는 전신팀이라 할 수 있는 동양방직 남녀배구단[* 훗날 [[동일방직]]으로 개명하며, 남자배구단은 해체된다.]이 창단한 1963년으로 볼 수 있다. 태광산업은 1971년 인천에 있다가 해체하는 동일방직 여자배구단을 그대로 인수해 창단했기 때문에 동양방직-동일방직 여자배구단까지 역사를 치면 여자 배구 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팀들 중 하나이다.[* [[GS칼텍스 서울 KIXX|GS칼텍스]]은 1970년 창단하면서 1965년에 대전방직으로 창단해 경성방직으로 이어져 오던 구단을 인수했다. 비슷하게 [[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]]도 1977년 창단하면서 1963년 창단해 1977년 해산한 [[한국산업은행]] 여자배구단을 인수했다.] 1991년에 흥국생명이 구단 운영을 하기 시작하여 '''흥국생명 여자배구단'''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. 여자배구팀 중에 오래된 팀이라는 것과는 관계없이 2005년 [[V-리그]]가 출범하기 전까지 존재감이 없는 구단이었다. [[배구/한국 세미프로|대통령배-슈퍼리그]]에서 가장 좋았던 성적이 1994 시즌 3위일 정도. 다만 효성이나 [[후지필름]]처럼 참가의 의의를 둔 팀 정도까진 아니였던게, [[전국체육대회]]나 종별선수권대회에서 간간히 뜬금 우승을 할 정도의 전력은 유지했었다. 참고로 과거 실업시절 [[전국체전]]에 출전할 때는 과거 [[태광산업]]의 본사가 [[부산광역시]]에 있었다는 이유로[* 현재도 [[부산광역시]] [[금정구]] [[구서동]]에 태광산업 공장과 흥국금융플라자가 있다.] [[부산광역시]] 대표로 출전했었다. 어쨌든 모기업 태광그룹이 넉넉치는 않지만 꾸준하게 지원을 했고, 몇 번의 해체설이 나도는 가운데서도 IMF를 지나서도 현재까지 별 탈 없이 구단을 운영했다. 1990년대 후반에 그리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팀의 간판 남순옥(센터), 정은선(레프트), 황명화(센터), 강미선(세터)[* 현재 [[세화여자고등학교]] 배구부 총감독.], 양숙경(레프트-라이트), [[구기란]](리베로)이 가끔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.[* 그 중에서도 [[구기란]]은 '여자부의 [[이호(배구인)|이호]]'급의 선수로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리베로 부문 최고선수상을 받기도 했다.] 그리고 인터넷 초창기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[[http://cafe.daum.net/systerlover/|인터넷 카페]]를 중심으로 한 팬클럽이 가장 활성화된 팀이기도 했다. 그렇게 실업시대가 흘러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